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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대북 억제가 실패할 상황에 대비하라

  • 관리자
  • 23.06.09
  • 8,405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지난 3월 28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정은 핵무기병기화사업지도 모습./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내부 봉기 일어나김정은 벼랑 끝으로 몰리면 망할 길을 살길로 오판할 수도

그때는 사전 억제가 아니라 북 핵 사용 거부로 목표 전환미사일 쏘기 전에 제거·요격을

 

북한의 핵무장이 제기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억제(deterrence)가 실패할 개연성에 있다. 미국의 확장 억제력 강화만으로 북한의 핵 선제 사용을 항상 억제할 수 있다면 북한이 아무리 많은 핵무기를 보유해도 걱정할 게 없다. 그러나 억제력이 차고 넘쳐도 북한에는 작동을 정지할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다른 핵무장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의 확장 억제를 과신하거나 억제 만능주의를 추종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북 억제가 실패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핵 사용의 손익 구조 역전이다. 핵을 사용하여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을 때는 억제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종말을 면할 수 없고 핵 사용을 자제하는 한 정권 유지에 지장이 없다면 김정은이 살 길을 제쳐두고 굳이 망할 길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대북 억제력이 창출되고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원리다.

 

그러나 핵을 사용하지 않아도 어차피 망할 상황이 온다면 핵 사용으로 잃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생존을 연장하는 데 더 유리해 질 수도 있으므로 억제는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김정은 정권이 내부적 변고를 당하여 벼랑 끝으로 몰릴 때 봉기하는 양민을 대량 학살하지 않고는 정권 유지가 불가능한 순간에 도달할 수 있다. 이때 김정은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대량 학살을 중단하기 위한 외부의 군사개입이다. 군사개입은 김정은 정권의 종말뿐 아니라 김정은 자신이 반()인도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외부의 군사개입을 차단할 수 있고 정권을 단 하루라도 연장하는 데 유용하다고 판단한다면 김정은이 핵 선제 사용을 주저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김정은이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망할 길을 살 길로 착각하거나 오판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듯 북한 체제가 안정을 누리는 동안에는 억제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다가도 실존적 위기를 만나면 정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이 계속 안정을 누릴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지원하고, 양민을 대량 학살하더라도 못 본척하고, 북한 내에 참혹한 인도적 재앙이 발생하더라도 한미 양국이 절대로 군사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제공하면 북한이 핵을 사용할 동기가 없어질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에 동족을 학살할 면허증을 발급하여 공범이 되는 것도 정치적·도의적으로 용납될 수 없겠지만 설사 이런 보장을 제공하더라도 김정은이 자신의 운명을 이에 맡길 만큼 한미 양국을 신뢰할 리가 있겠는가. 또한 국제사회가 대북 포용 정책으로 돌아가더라도 김정은 정권이 내정 실패로 자초할 위기를 막을 능력은 없다.

 

억제가 실패하는 또 하나의 원인은 북한 체제의 특성에 있다. 다른 핵무장 국가들은 핵무기의 선제 사용에 존망을 걸어야 할 지경으로 나라가 추락하면 정부에 책임을 묻고 정권을 교체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정권 교체가 불가능한 유일한 핵무장 집단이라는 점에서 다른 핵 무장국가와는 다르다. 김정은이 바로 국가와 동일시되는 최고 존엄이므로 누구에게도 책임을 질 일이 없다. 이러한 신정 체제하에서는 당과 군이 최고 존엄결사 옹위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면 무고한 인명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 백성들이 어떤 고초를 당하든 왕실과 종묘사직만 건사하면 나라를 온전히 지킨 것으로 착각한 조선 시대의 의식 구조와 다를 바 없다.

 

핵 무장한 북한의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의 안보 전략은 억제 중심적 접근을 넘어 북한의 핵 사용을 거부(deny)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아무리 강력한 응징 보복도 수만의 인명을 잃고 난 이후에나 사용될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거부란 김정은이 핵 공격 명령을 내린 후 핵미사일이 발사되기 전에 이를 제거하고, 선제 타격에서 놓친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할 신형 고체연료 탄도미사일의 배치가 완료되면 발사 소요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으므로 10분 이내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대와 기지를 제거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전력의 획기적 증강과 함께 더 촘촘한 다층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 시급하다. 또한 거부가 성공하려면 북한의 모든 미사일 기지와 발사장에 대한 감시 정찰의 시간적·공간적 공백을 해소하는 것이 관건이다. 스텔스 드론과 스타링크 같은 민간 기업의 군집 위성을 활용하여 감시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후약방문이 필요 없는 거부전략이 최선의 국방 전략이다.

 

출처: 조선일보(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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